정진세 교수의 건강 비타민
인지기능 30~40% 빨리 떨어져
소외감·고립감 심하고 우울증도
65세 이상은 1~2년마다 청력검사
난청 판정 받으면 보청기 꼭 껴야
나이가 들면 귀가 잘 안 들리는 난청이 잘 생긴다. 일반적으로 난청은 보통 크기의 말소리를 듣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도 난청 이상을 의미한다. 양쪽 귀에 중도 난청 이상이 나타나면 의사소통이 힘들어지고 전화·초인종 소리를 잘 듣지 못해 일상생활이 불편해진다. 소외감·고립감을 느끼고 우울증 위험이 커진다.
나아가 난청이 있을 땐 치매가 오기 쉽다. 2013년 발표된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존스홉킨스의대 공동 연구에 따르면 난청이 있는 노인에서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 발생 위험은 청력이 정상인 노인보다 24% 높았다. 그뿐 아니라 난청이 있는 노인의 인지 기능 저하 속도는 일반 노인보다 30~40% 빨랐다.
난청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노화다. 소리를 인지하는 달팽이관은 30대부터 늙는다. 점차 높은 음(고주파)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20~2만㎐(헤르츠)지만 중년 이후엔 이 범위가 20~1만2000㎐로 줄어든다. 헤르츠는 소리의 높낮이를, 데시벨(dB)은 소리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다. 노인성 난청이 심해지면 같은 데시벨이어도 주파수가 높은 여성·아이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반면에 주파수가 낮은 남성의 목소리는 비교적 잘 들린다. 둘째는 소음이다. 이어폰을 끼고서 음악을 크게 틀고 들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음성 난청이 진행된다. 이러면 귀가 약해져 노인성 난청도 더 잘 발생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은 올해 2월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미국의 70세 이상 난청 인구 비율은 2020년 55.4%에서 2060년에는 67.4%로 증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인구 고령화 추세나 과도한 소음 노출을 고려하면 한국의 난청 인구도 미국과 비슷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2년)에 따르면 연령별 중도 난청 이상 인구의 비율이 50대(3.4%)까지는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60대부터 11.9%로 늘어났다. 70대는 26,2%, 80대는 52.8%로 급증한다. 하지만 중도 이상 난청 환자 중 보청기를 착용하는 사람은 12.6%에 불과하다.
노인성 난청의 대안은 보청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청력을 개선하고 인지기능을 높여 치매 등을 예방할 수 있다. 2011년 발표된 국내 연구에 따르면 보청기를 6개월 낀 60, 70대 난청 환자 18명과 끼지 않은 11명을 비교한 결과, 보청기를 낀 그룹의 언어 인지기능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보청기 사용 인구가 늘지 않는다. 주변의 부정적 시선에다 비싼 비용 때문이다. 난청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보청기를 권하면 일부 환자가 “청각장애인으로 보일 것 같아 착용하기 싫다”고 말한다. 보청기 가격은 보통 한쪽에 100만~500만원이다.
난청은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노인성 난청은 대부분 자각증상 없이 서서히 진행된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건강검진을 잘 받다가 은퇴하면 비용 등의 문제로 검진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많다. 은퇴할 무렵이면 청각 이상이 증가할 때지만 오히려 조기 발견 기회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이상이 느껴졌을 때는 난청이 심해져 치료가 힘든 경우가 많다.
고도 난청(71dB HL) 이상에서는 보청기를 착용해도 청력이 그다지 좋아지지 않는다. 인공달팽이관 이식(인공와우 이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인공와우 이식은 건강보험 적용 여부에 따라 비용이 수백만~수천만원에 이르고, 수술이 가능한 대상자도 제한적이다.
난청을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해 진행을 늦추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큰소리로 음악을 듣는 것을 피하고 ▶65세 이상은 1~2년에 한 번 청력 검사를 받으며 ▶난청으로 판정되면 되도록 빨리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 부모님이 대화를 잘 못 알아듣거나 초인종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면 병원에서 5만~6만원을 내고 청력 검사를 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진세 교수
연세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대 교수, 대한이과학회 간사